김춘산 편집장
제작연대는 왜 중요한가?
경상북도 영주시 평은면 강동리 왕유동 계곡에 자리한 '도마상(도마 마애석상)'은 발견 이후 지금까지 다양한 논쟁의 중심에 서 있다.
그 논쟁의 핵심은 단순하지 않다.
'이 석상이 누구를 형상화한 것인가'라는 문제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질문은 바로 "언제 만들어졌는가"이다.
만약 제작 시기가 통일신라 시대라면 기존 불교미술의 한 작품으로 이해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고려 시대라면 당시의 종교·문화 환경 속에서 다시 해석해야 한다.
그러나 만일 그보다 더 이른 시기에 제작되었다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제작연대는 곧 이 석상의 역사적 의미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마상을 둘러싼 모든 논의는 결국 제작연대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서 출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까지 왜 결론이 나지 않았는가?
흥미로운 점은 도마상이 발견된 이후 수십 년이 지났음에도 제작 시기에 대한 학계의 공통된 결론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비교적 분명하다.
도마상은 출토 유물이 아니라 자연 암벽에 새겨진 마애상(磨崖像)이기 때문에 제작연대를 직접 알려 주는 명문(銘文)이나 기록이 확인되지 않았다.
또한 지금까지 실시된 연구 역시 조형적 특징이나 양식 비교에 집중되어 왔으며, 절대연대를 확정할 수 있는 과학적 분석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연구자들은 얼굴의 표현(잘려나간 부분의 추정을 통한), 손의 형태, 신체 비례, 조각 기법, 풍화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비교하여 제작 시기를 추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동일한 조형 요소를 놓고도 서로 다른 결론이 제시되고 있으며, 제작연대는 지금도 계속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다.

<내용 이해를 돕기 위한 AI 이미지 제작>
현재 제기되는 세 가지 주요 학설
현재 도마상의 제작 시기를 설명하는 견해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원삼국시대설이다.
이 견해는 도마상의 단순하면서도 독특한 조형성과 기존 불교 조각과 다른 표현 방식에 주목하며, 불교 조각이 본격적으로 정착하기 이전의 매우 이른 시기에 제작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둘째는 통일신라설이다.
현재 가장 널리 언급되는 견해 가운데 하나로, 통일신라 시대에 마애불 조성이 활발했던 역사적 배경과 일부 조형적 특징을 근거로 제시된다.
셋째는 고려설이다.
이 견해는 얼굴 표현과 신체 비례, 조각 수법 등을 고려 시대의 지방 석조양식과 연결하여 해석한다.
세 학설 모두 각각 일정한 근거를 갖고 있지만, 어느 하나가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특정 학설을 서둘러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근거와 한계를 객관적으로 비교·검토하는 일이다.
제작연대 논쟁이 갖는 의미
도마상의 제작 시기를 밝히려는 노력은 단순한 연대 추정에 그치지 않는다.
그 결과에 따라 도마상이 한국 미술사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달라지고, 나아가 당시의 종교문화와 지역사의 이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강동리 왕유동이라는 입지와 주변 유적, 조형 양식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제작연대를 밝히는 과정은 이러한 요소들을 함께 살펴보는 종합적인 연구가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제작연대는 도마상 연구의 마지막 결론이 아니라 모든 연구의 출발점이다.
제작연대를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문화재의 제작연대를 추정하는 작업은 단순히 '오래되어 보인다'는 인상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역사학과 고고학, 미술사학에서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요소를 종합하여 제작 시기를 판단한다.
첫째는 조형양식이다.
얼굴(남아있는 부분을 통한)의 표현 방식과 신체 비례, 의복의 주름, 손의 형태와 자세 등은 시대마다 일정한 특징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둘째는 조각기법이다.
암반을 다듬은 방식과 선의 깊이, 마감 처리 등은 당시의 조각 기술 수준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셋째는 주변 유적과의 관계이다.
석상이 자리한 지역의 고고학적 환경과 주변 문화유산은 제작 시기를 추정하는 데 중요한 참고자료가 된다.
넷째는 문헌기록과 비교연구이다.
비슷한 형태의 석조물이나 역사 기록과 비교하여 상대적인 연대를 추정하는 방법이다.
결국 하나의 근거만으로 제작연대를 단정하기는 어렵고, 여러 자료를 종합하여 가장 합리적인 가능성을 찾는 과정이 필요하다.
원삼국시대설은 왜 제기되는가?
도마상을 원삼국시대 또는 그에 가까운 시기의 작품으로 보는 견해는 기존 불교 조각과 다른 독특한 조형성에서 출발한다.
대표적인 근거는 손의 표현이다.
전체적으로 단순하면서도 절제된 표현은 후대 불상에서 흔히 나타나는 화려한 장식성과는 차이를 보인다.
또한 일부 연구자들은 이러한 특징이 특정 종교 양식이라기보다 초기 단계의 조형성을 보여주는 것일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견해에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부분도 있다.
현재까지 원삼국시대를 직접 입증하는 발굴자료나 명문은 확인되지 않았으며, 절대연대를 결정할 수 있는 과학적 분석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원삼국시대설은 흥미로운 가설이지만, 이를 곧바로 역사적 사실로 단정하기에는 아직 충분한 근거가 축적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통일신라설의 근거와 한계
현재 가장 널리 언급되는 견해 가운데 하나는 통일신라설이다.
통일신라는 우리나라 석조미술이 가장 활발하게 발전한 시기였다.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마애불과 석불이 조성되었고, 불교문화 역시 국가적 차원에서 크게 융성하였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때문에 도마상 역시 통일신라 시기의 석조물일 가능성이 있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특히 자연 암벽을 이용한 마애조각이라는 점은 통일신라 불교미술과 일정 부분 공통점을 가진다.
그러나 통일신라설 역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도마상의 일부 조형 요소는 일반적인 통일신라 불상과 차이를 보인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예가 손의 형태이다.
기존 통일신라 불상에서 자주 확인되는 수인(手印)이나 신체 비례와 완전히 일치한다고 보기 어려운 부분도 존재한다.
따라서 통일신라설은 현재 가장 현실적인 설명 가운데 하나이지만, 아직 모든 의문을 해소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고려설은 무엇을 근거로 하는가?
고려설은 도마상의 일부 표현을 고려시대 지방 석불 양식과 연결하여 이해하려는 견해이다.
고려시대에는 지역마다 다양한 석조양식이 나타났으며, 중앙의 조형양식과 다른 표현도 적지 않았다.
이러한 점에서 도마상의 단순한 조형성과 일부 얼굴 표현은 고려시대 지방 장인의 작품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그러나 고려설 역시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한 것은 아니다.
현재 확인된 자료만으로는 도마상이 고려시대에 제작되었다고 단정하기 어려우며, 오히려 기존 불교 조각과 다른 특징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세 가지 학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현재까지 제시된 세 가지 견해는 모두 일정한 근거를 갖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모두 일정한 한계를 안고 있다.
따라서 지금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각 학설이 어떤 근거 위에서 제시되었는지, 또 어떤 부분이 아직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는지를 객관적으로 살펴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도마상의 제작연대는 어느 특정한 연구자들만의 주장만으로 결정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 보다 다양한 자료와 과학적 분석, 비교 연구가 축적될 때 비로소 보다 설득력 있는 결론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제작연대 논쟁의 본질은 '연도'가 아니다.
도마상의 제작연대를 둘러싼 논쟁은 단순히 "몇 세기에 만들어졌는가?"를 밝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어떤 역사적 배경 속에서 이 석상이 조성되었는가?"이다.
문화재의 연대는 숫자 하나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사회와 종교, 예술과 교류의 흔적을 함께 읽어내는 과정이다.
따라서 도마상의 제작 시기를 규명하는 일은 우리 문화사의 빈틈을 메우는 작업이기도 하다.
현재 단계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
지금까지의 연구를 종합하면 몇 가지는 비교적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 도마상은 실제로 존재하는 암벽 조각이다.
• 학계에서도 제작연대에 대해 하나의 통일된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
• 원삼국시대설, 통일신라설, 고려설 등 여러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 어느 학설도 현재 결정적인 증거만으로 확정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러한 점은 도마상이 아직도 연구의 대상임을 의미한다.
앞으로 필요한 연구
도마상 논쟁을 한 단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새로운 연구가 필요하다.
첫째. 과학적 조사
• 암석 풍화도 분석
• 조각 흔적 분석
• 3차원 디지털 스캔
• 정밀 사진측량
기존의 육안 관찰을 넘어서는 과학적 접근이 이루어진다면 제작 시기를 추정하는 데 새로운 단서가 될 수 있다.
둘째. 비교 연구
전국의 마애불과 석불, 그리고 초기 석조 조각과의 체계적인 비교가 필요하다.
도마상만을 단독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 또는 유사 양식의 문화재와 함께 살펴볼 때 조형적 특징을 더욱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셋째. 지역사 연구
왕유동 일대의 옛 교통로, 마을 형성 과정, 주변 유적과의 관계를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문화재는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 주변의 역사와 환경 속에서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도마상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도마상의 진정한 가치는 제작연대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에 있을지도 모른다.
논쟁이 존재한다는 것은 아직 연구할 여지가 남아 있다는 뜻이며, 새로운 자료와 방법을 통해 이해가 발전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는 의미다.
중요한 것은 논쟁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연구와 토론을 통해 사실에 가까워지는 과정이다.
아리랑타임즈의 시각
아리랑타임즈는 이번 기획특집에서 특정 학설을 결론으로 제시하지 않았다.
그 대신 각 견해의 근거와 한계를 독자에게 제시하고, 독자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이는 어느 한쪽의 입장을 대변하기보다, 사실과 자료를 중심으로 기록하는 언론의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서이다.
앞으로 새로운 발굴 성과나 과학적 분석 결과가 나온다면, 아리랑타임즈는 그 내용 역시 같은 기준으로 검토하고 독자에게 전달할 것이다.
맺음말
도마상은 지금도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세월은 바위를 풍화시켰지만, 사람들의 질문까지 지우지는 못했다.
'언제 만들어졌는가?'라는 질문은 아직 완전한 답을 얻지 못했지만, 그 질문을 멈추지 않는 한 연구도 계속될 것이다.
문화유산은 결론이 아니라 탐구의 과정 속에서 더욱 깊은 의미를 갖는다.
아리랑타임즈는 앞으로도 도마상을 둘러싼 새로운 자료와 연구 성과를 꾸준히 기록하며, 우리 문화유산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작은 디딤돌이 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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