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 김춘산
한 사람의 꿈에서 시작된 이야기
여의도에 있는 한 고등학교 역사교사인 유우식 선생은 여러 인터뷰와 강연을 통해 다음과 같은 취지의 증언을 남겼다.
"예수님이 꿈에 나타나 경상북도 영주시에 있는 도마상을 세상에 널리 알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그는 다음 날 아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영주로 내려가 이끼에 덮여 있는 도마상을 발견하게 되었노라고!
이 증언은 종교적 체험에 해당한다.
따라서 역사학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사실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그 도마상 발견 이후 많은 사람들과 단체들이 영주로 내려가 도마상을 살펴보고 연구하며 각자의 주장들을 내세우며 큰 주목을 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픽 : openAI DALL-E 제작>
현몽은 역사적 사실인가?
여기서 반드시 구분해야 할 부분이 있다.
사실
유우식 선생이 현몽 체험을 했다고 증언한 것은 사실이다.
사실
그 체험 이후 도마상 연구에 평생을 바쳤다는 것도 사실이다.
추측
예수의 실제 계시였는지는 역사적으로 검증할 수 없다.
추측
도마상이 실제 사도 도마와 관련되어 있는지는 현재 입증되지 않았다.
즉,
현몽 자체는 신앙적 체험의 영역이고, 도마상의 실체는 역사 연구의 영역이다.
양자는 서로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왜 유우식 선생은 그것을 소명으로 받아들였을까?
역사적으로 보면 인류 문명사에는 수많은 종교적 소명 체험이 존재한다.
기독교의 경우
• 사도 바울의 다메섹 체험,
• 종교개혁가들의 회심 체험,
• 선교사들의 소명 체험 등이 대표적 사례이다.
유우식 선생 역시 자신의 체험을 단순한 꿈이 아니라 사명으로 받아들였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그는 이후 수십 년 동안
• 왕유동 답사
• 암각문 연구
• 초기 기독교 전래 연구
• 도마교회 연구
등에 몰두하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현몽은 단순한 꿈이 아니라 연구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우연인가, 필연인가?
도마상 논쟁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바로 이것이다.
만약 유우식 선생의 꿈이 없었다면
왕유동 마애상은 지금처럼 전국적인 관심을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문화재로서 존재는 했겠지만,
초기 기독교 전래설이나 도마교회 전승과 연결되는 연구도 등장하지 않았을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도마상을 세상에 알린 가장 중요한 계기는 석상 자체가 아니라 유우식 선생의 현몽이었고 소명의식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역사와 신앙은 만날 수 있는가?
도마상을 둘러싼 논쟁은 단순한 문화재 논쟁이 아니다.
그 배경에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
하나는 역사학이다.
역사학은 문헌과 유물, 고고학적 증거를 요구한다.
다른 하나는 신앙이다.
신앙은 체험과 믿음, 영적 확신을 바탕으로 한다.
유우식 선생의 현몽 이야기는 바로 이 두 세계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다.
역사학은 그 꿈을 증명할 수 없다.
반대로 신앙은 반드시 역사학의 증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도마상을 둘러싼 수십 년의 논쟁은 결국 이 두 시각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결론
도마상을 세상에 알린 것은 석상이 아니라 한 사람의 믿음이었다.
현재까지 확인된 자료만으로는 도마상이 실제 사도 도마와 관련된 유물인지 단정할 수는 없다.
또한 유우식 선생의 현몽이 역사적 사실인지도 검증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다.
한 역사교사가 자신의 신앙적 체험을 계기로 왕유동의 거대한 석상을 발견했고, 그 결과 오랜 세월동안 잊혀져 있던 문화유산이 세상의 관심 속으로 들어오게 되었다는 점이다.
도마상이 실제 무엇인지는 앞으로도 연구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오늘날 '도마상'이라는 이름이 존재하게 된 배경에는 유우식 선생의 확고한 신념과 평생의 노력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부인하기 어렵다.
어쩌면 왕유동 도마상의 가장 큰 의미는 석상 자체가 아니라, 한 사람이 평생 추구한 질문 속에 있는지도 모른다.
"왜 나는 이 석상을 발견하게 되었는가?"
그 질문은 지금도 왕유동 산자락에 조용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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