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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특집 7회] 강동리 ‘도마상’은 과연 불상인가? - 한반도 불상사의 연대와 조형사적 관점에서 다시 본 ‘도마상’ -
  • 기사등록 2026-05-08 03:02:02
  • 기사수정 2026-05-24 23:5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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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리 '도마상'은 과연 불상인가?


경상북도 영주시 평은면 강동리에 있는 석상(일명 ‘도마상’, 이하 동일)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를 오래된 '불상(佛像)'의 일종으로 계속 주장하고 있고, 다른 편에서는 한반도의 불교 전래 시기와 불상 조성사(造成史), 그리고 인도 및 동아시아 불교 미술의 발전 과정 등을 검토해볼 때 불상 아닌 '다른 상(狀)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반도에 불상이 들어온 시기를 따져본다면 어떤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까? 

 

불상이 인도에서 처음 제작되기 시작한 시기는 대략 1세기 무렵이다. 

그 이전에는 ‘무불상(無佛像)의 시대’라고 하여 부처를 인간의 형상으로 직접 표현하지 않고, 대신 보리수·법륜·불족적(佛足跡)·연꽃·탑 등의 상징물로 표현하였다. 


즉,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 2,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은 '불상'을 만들지 않고 부처의 전생의 선행을 이야기한 본생담(本生譚)을 묘사한 본생도(本生圖), 또는 일생의 중요한 사건이나 가르침의 내용을 묘사한 불전도(佛傳圖)나 회화, 부조 등 여러 가지 상징적인 형태로 표현하며 불심을 나타내었다.


그러다 서기 1세기 경, 인도의 '쿠샨' 왕조(Kushan Empire) 시대에 간다라(Gandhara)와 마투라(Mathura) 지역에서 최초의 불상이 본격적으로 등장했고, 이때의 불상도 헬레니즘 조각 양식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것으로 미술 사학계에서는 보고 있다. 다시 말해, 도마가 활동하던 바로 그 1세기 무렵에서야 인도에서 처음으로 '불상'이 만들어졌으며 차츰 주변 지역으로 전파되고 있었던 것이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4979) 

 

그렇다면 한반도의 상황은 어떠했는가?

'삼국사기' 등 관련 사료에 따르면 불교가 고구려에 공식 전래된 시기는 서기 372년 소수림왕 때로 기록되고 있다. 

이어 서기 375년에야 '초문사(肖門寺 또는 省門寺)'와 '이불란사(伊弗蘭寺)'가 창건되었고, 그 이후에서야 평양 지역을 중심으로 사찰 체계가 갖추어져 불상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즉, 한반도의 불교 수용 자체는 4세기 후반 이후이며, 불상은 그보다 더 늦게 들어왔던 것이다. 


현존하거나 출토된 초기 불상들의 연대 역시 대부분 5~6세기 이후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 알려진 가장 오래된 마애불 가운데 하나인 충청남도 태안의 ‘동문리 마애삼존불입상’ 역시 6세기 말~7세기 초의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출처: 고재완의 여행을 떠나요 블로그, https://blog.naver.com/jawkoh/223808978721)

(출처: 위키백과 한국사 연표, 

https://ko.wikipedia.org/wiki/%ED%95%9C%EA%B5%AD%EC%82%AC_%EC%97%B0%ED%91%9C)

 


보은 법주사의 '마애여래의좌상;(출처 : 우리역사넷)

부여 대조사의 '석조미륵보살입상'(출처 : 우리역사넷)


 

다시 '도마상'으로 돌아와서 살펴볼 때 도마상 아래의 글자 ‘전행(全行)’이라는 글씨체는 '왕희지' 이후 등장한 '해서체'가 아니라 한나라 시기(BC 202~AD 220)에 사용된 '예서체'로 보이며, '전행(全行)'이라는 글자는 ‘지전행(地全行)’으로 해석된다고 조국현박사는 주장하고 있다. 

‘지전행’이라는 글자는 ‘땅끝까지 다닌 사람’이라는 뜻으로 '도마'를 지칭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서 '도마상'의 제작 시기를 서기 220년 이전으로 추정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특정 문자나 문양을 보고 곧바로 중국이나 중동의 문자라고 단정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그러나 반대로 그러한 요소들에 대한 충분한 검토없이 암각화는 무조건 '불상'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지양해야만 한다.
(출처 : 김해시 기독교연합회, 영주 왕유리 도마석상 탐방 ‘감탄’(영주시민신문)  

         https://www.yj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88819)


이러한 것을 종합해 볼 때 강동리 ‘도마상’은 한반도에 '불상'이 제작되기 훨씬 이전에 제작된 것으로 유추된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도마상’의 조형적 특징을 둘 수 있다.

'도마상'은 기존 불상들과 비교해 봤을 때 전형적인 불교 조각 양식인 육계(肉髻)나 나발(螺髮), 법의(法衣)의 유려한 주름, 시무외인(施無畏印)이나 여원인(與願印) 등의 수인(手印) 체계가 뚜렷하게 확인되지 않고 있는 조각상이다.

 

역사 연구에서 중요한 것은 선입견이 아니라 비교 검토와 연대 검증이다.

특히 ‘도마상’ 논쟁의 핵심은 단순한 종교 문제가 아니라, “과연 기존 불교 조형사(史)와 시간 축으로 설명이 가능한 유물인가?”의 문제이다.

 

만일 ‘도마상’이 기존 불교 조각의 계보와 연결되지 않는 독자적 조형물이라면, 이는 한반도 고대 문화교류사(史)에 놀라운 화두를 던지는 것이며, 아울러 “초기 기독교 동방 전래의 역사”에 대해 다시 써야만 하는 중차대한 문제인 것이다.

 

실제로 기독교 전승에 따르면 예수의 제자인 성 '토마스(도마)'는 인도 지역까지 복음을 전한 인물로 기록되어 있으며, 인도 남부 '케랄라' 지역에는 지금도 '토마스 전승 공동체'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그렇다고 '도마'가 실제로 한반도까지 왔다고 단정하는 것 자체도 또다른 아집(我執)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기에 지금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것은 객관적이어야 하고 사실적이어야만 한다


이럴 때 진짜 필요한 것은 아무런 선입견없이 ‘도마상’에 대해 정밀한 '고고학적 조사'와 '암석 연대 분석', '조형 비교 연구', '문자 판독', 그리고 '국제 학술 차원의 공동 검증'이 있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역사에 있었던 '지난 날의 사실과 교훈'을 오늘 날의 우리가 온전히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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